데이비드 리카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데이비드 리카도는 177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고전 경제학자로, 성공한 주식 중개인이자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1810년 《금괴의 고가, 은행권의 가치 하락 증거》를 발표하여 금본위제 채택을 주장했고, 1817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를 통해 비교우위 이론을 제시하며 자유 무역의 이점을 강조했다. 리카도는 지대, 임금, 이윤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비교우위론과 노동가치설, 그리고 곡물법 폐지를 주장한 자유 무역 옹호론으로 유명하다. 그의 사상은 이후 경제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마르크스, 발라스 등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주식 투자자 - 박영옥 (주식 농부)
박영옥은 1957년 전라북도 정읍 출신으로 가치 투자를 기반으로 장기 투자를 하는 '주식 농부'라는 별칭의 대한민국 투자자이며, 중앙대학교 산업창업대학원 교수 역임, 스마트인컴 설립, 사회공헌 대상 수상 등의 활동을 했다. - 주식 투자자 - 전문투자자문사
전문투자자문사는 고객의 투자 목표 달성을 위해 투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미국에서는 자산 규모에 따라 정부에 등록하고 자격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투자 결정은 고객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 - 유대계 포르투갈인 - 바뤼흐 스피노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네덜란드의 철학자로, 일원론적 범신론, 코나투스 개념, 심신평행론을 특징으로 하는 철학을 펼쳤으며 《에티카》, 《신학정치론》 등의 저서를 통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유대계 포르투갈인 - 조르즈 삼파이우
포르투갈의 정치인이자 변호사였던 조르즈 삼파이우는 리스본 시장과 포르투갈 대통령을 역임하며 동티모르 독립 지원과 마카오 주권 이양 등의 외교 현안을 처리했고, 대통령 퇴임 후에는 유엔 특별 특사 등으로 국제 사회에 기여했다. - 잉글랜드의 투자가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거시경제 이론을 통해 현대 경제학과 정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옹호하는 그의 사상은 현대 경제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잉글랜드의 투자가 - 리처드 브랜슨
영국의 기업가 리처드 브랜슨은 버진 그룹의 설립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사업 모델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동시에 여러 논란에도 직면한 인물이다.
데이비드 리카도 | |
---|---|
기본 정보 | |
![]() | |
존칭 접두사 | 각하 |
이름 | 데이비드 리카도 |
국적 | 영국 |
출생일 | 1772년 4월 18일 |
출생지 | 잉글랜드 런던 |
사망일 | 1823년 9월 11일 |
사망 장소 | 잉글랜드 글로스터셔 개트컴 파크 |
직업 | 사업가 경제학자 |
자녀 | 데이비드 (주니어) 포함 |
정당 | 휘그당 |
정치 | |
의회 의원 | 포터링턴 |
임기 시작 | 1819년 2월 20일 |
임기 종료 | 1823년 9월 11일 |
이전 의원 | 리처드 샤프 |
다음 의원 | 제임스 파콰 |
경제학 | |
학파 | 고전파 경제학 |
영향 | 벤담 이븐 할둔 스미스 |
기여 | 리카도적 동등성 노동가치설 비교 우위 수확 체감의 법칙 리카도 사회주의 경제적 지대 |
2. 생애
데이비드 리카도는 17명의 형제자매 중 셋째로 런던에서 태어났다. 증권거래소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4세 때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21세에 퀘이커교도와 결혼하면서 정통파 유대교 신앙을 버리고 유니테리안파 신자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의절당하고 캠브리지 대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증권 중개인으로서 독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 결과에 대한 투기로 재산을 모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그는 이미 매우 부유한 상태였다. 1823년 9월 14일자 ''선데이 타임스''(The Sunday Times)는 리카르도가 전투 중 "100만 파운드 이상을 순이익으로 얻었다"고 보도했고, 이는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리카르도는 1815년 6월 런던에서 전투 결과가 알려지기 전에 최근 매입한 정부 채권을 매도하여 가격 상승의 절반을 놓쳤다.[11]
42세가 되던 1814년, 리카도는 은퇴 후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에 있는 갯컴 파크(Gatcombe Park)라는 부동산을 구입하고 시골로 은퇴했다. 1818년부터 1819년까지 글로스터셔 고등 보안관(High Sheriff of Gloucestershire)으로 임명되었다.[12] 1818년 8월, 2만 5천 파운드의 대출 조건의 일환으로 4천 파운드에 포터링턴 경(Lord Portarlington)의 의회 의석을 매입하여 5년 후 사망할 때까지 의원직을 유지했다.[13]
리카도는 제임스 밀(James Mill)의 절친이었으며,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과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와도 친분이 있었다. 특히 맬서스와는 사회에서 지주들의 역할과 같은 문제에 대해 서신을 통해 상당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정치 경제 클럽(Political Economy Club)과 킹 오브 클럽(휘그 클럽)(King of Clubs (Whig club)) 회원이기도 했으며, 지질학회(The Geological Society) 창립 회원 중 한 명이었다.[10] 그의 여동생 중 막내는 작가 사라 리카르도-포터(Sarah Ricardo-Porter)였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증권 거래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1823년, 리카도는 귀의 염증이 뇌로 번져 패혈증으로 51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는 7500만파운드 (약 150억 엔)의 유산을 남겼다.[74] 사망 10일 전, 논쟁 상대였던 맬서스에게 편지를 보내 "논쟁이 우리의 우정을 결코 해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제 주장에 동의했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지금보다 더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적었다.[75]
2. 1. 초기 생애 및 가족
데이비드 리카도는 영국 런던에서 성공한 주식 중개인 아브라함 이스라엘 리카도(Abraham Israel Ricardo, 1733?–1812)와 아브라함 델발레(Abraham Delvalle)의 딸인 아비가일(Abigail, 1753–1801) 사이에서 태어난 17명의 자녀 중 세 번째로 생존한 아들이었다.[4][5][6][7] 리카도 가족은 포르투갈 출신의 세파르디계 유대인으로,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이주해 왔다.[6] 아비가일의 여동생 레베카(Rebecca)는 판화가 윌슨 로리(Wilson Lowry)의 아내였으며, 판화가 조셉 윌슨 로리(Joseph Wilson Lowry)와 지질학자이자 광물학자 겸 작가인 델발레 로리(Delvalle Lowry)의 어머니였다.[4][5][6][7]14세에 아버지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리카도는 21세에 퀘이커교도인 프리실라 앤 윌킨슨(Priscilla Anne Wilkinson)과 결혼하기 위해 가출하여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유니테리언교로 개종했다.[8] 이러한 종교적 차이로 인해 가족과 소원해졌고, 리카도는 독립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9]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버렸고, 어머니는 다시는 그와 말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이후 리카도는 저명한 은행인 러벅스 앤 포스터(Lubbocks and Forster)의 지원을 받아 독자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2. 2. 정치 경력
리카르도는 포터링턴(Portarlington) 선거구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나폴리(Naples)와 시칠리아(Sicily)의 자유주의 정치 운동을 지지했다. 그는 야당과 함께 투표했고, 토바고(Tobago)의 사법 행정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또한 신성 모독 및 폭동적 명예훼손 법 폐지에 찬성표를 던졌고, 피터루 학살에 대한 조사에도 찬성했으며, 1821년에는 위조에 대한 사형 폐지에 찬성했다.[14]그는 자유 무역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1821년에는 설탕 관세 갱신에 반대표를 던졌는데, 이는 서인도 제도산보다 동인도 제도산 농산물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한 반대였다. 그는 목재 관세에도 반대했다. 그는 의회 개혁에 찬성표를 던졌고, 1822년에는 웨스트민스터 기념 개혁 만찬에서 이를 옹호하는 연설을 했으며, 형사 사법 개혁에도 찬성표를 던졌다.[14]
리카르도는 자유 무역을 통한 수입 증가가 생계 및 소비에 필요한 상품의 양을 증가시킴으로써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킨다고 믿었다. 그는 "시장의 변화에서 서로 다른 주식의 상대 가격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우연한 차이를 매우 빠르게 인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14]
나폴레옹 전쟁 동안 리카르도는 영국이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 부과한 곡물법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그는 곡물법으로 인한 지대 상승이 국가의 경제적 이윤을 희생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영국이 제조업 제품 수출과 맞바꿔 농산물을 수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6] 결국 그의 사후에 간섭주의적 법률은 폐지되었고, 그의 자유 무역관은 영국의 공공 정책이 되었다.[17]
리카르도의 친구 존 루이스 말렛은 그가 의회 개혁과 비밀 투표를 마치 그러한 일을 성취하고 기존 시스템을 내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그의 경험과 실제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이 그의 정치 경제에 대한 견해를 의심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2. 3. 은퇴와 죽음
리카도는 은퇴 10년 후이자 국회에 입성한 지 4년 만에 중이염이 뇌로 퍼져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51세였다.[18]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사이에는 여덟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오스만 리카르도(Osman Ricardo)(1795–1881; 워스터 지역구 국회의원, 1847–1865), 데이비드 리카르도(젊은)(David Ricardo (the younger))(1803–1864, 스트라우드 지역구 국회의원, 1832–1833), 그리고 생명근위대 장교이자 옥스퍼드셔 부사령관(부사령관(deputy lieutenant))을 지낸 모티머 리카르도가 포함된다.[18]
리카도는 윌트셔주(윌트셔) 치펜햄(치펜햄)의 교외 지역인 하든후이시에 있는 성 니콜라스 교회 묘지에 화려한 묘비를 세워 묻혔다. 사망 당시 그의 자산은 675000GBP에서 775000GBP 사이로 추산되었다.[7]
3. 경제 사상
리카도는 37세에 영국은행의 지폐 발행량 감소를 옹호하는 글을 기고한 후, 1810년에 『금괴의 고가, 은행권의 가치 하락 증거』를 출판하며 경제학계에 등장했다.[19][20] 그는 1797년 잉글랜드 은행의 금본위제 정지와 불환지폐 발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해 화폐수량설에 입각,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주장했다.
리카도는 노예제 폐지론자로서, 1823년 동인도회사 회의에서 노예제도를 국가적 오점이라 비판했다.[21]
애덤 스미스는 자유로운 상업 은행이 경제 성장에 유리하다고 본 반면, 리카르도는 중앙은행을 옹호했으며, 이는 존 스튜어트 밀 등에게 계승되었다. 리카르도는 『국립은행 설립 계획』에서 중앙은행의 화폐 발행 자율성을 주장하며,[22] 금과 국고증권 비율, 정부 채권을 통한 중앙은행 유동성 확보를 제안했다.[23] 그는 화폐 유통과 수량 결정은 국가나 개인에게 위임될 수 없으며, 균등한 분배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적 사회학자 메리 S. 모건은 리카도를 "경제 모델링 선구자"로 평가한다.[32] 그는 지대 연구에서 토지 소유자, 자본 소유자, 노동자 간 이윤 분배를 수치적으로 실험했다.[32]
리카르도는 『이윤론』에서 실질임금 상승은 제조업 이윤 감소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윤에 관한 에세이』에서는 "이윤은 임금에, 임금은 필수품 가격에, 필수품 가격은 식량 가격에 달렸다"고 말했다.
1500년~1750년 중상주의와 달리, 리카르도는 비교우위를 통한 산업 특화와 자유무역을 옹호하며, 이는 항상 긍정적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리카르도는 기술 변화가 단기적으로 노동에 미치는 영향에 우려를 표하며,[44] 1821년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노동자 계급에 해롭다"고 썼다.[44]
신고전파 학파 부상으로 리카르도 영향력은 일시 감소했지만, 피에로 스라파가 그를 재평가하며 신리카르도주의 학파가 탄생했다.
리카르도의 리카르도 등가 원리는 정부 지출 재원 조달 방식이 특정 상황에서 경제에 무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리카르도는 납세자 비합리성 때문에 현실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3. 1. 가치 이론
리카도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노동가치설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24] 스미스와 리카도 모두 토지, 노동, 자본을 생산의 세 가지 기본 요소로 보았지만, 스미스는 노동을 가치 결정의 주요 요인으로 생각했다. 반면 리카르도는 생산에 세 가지 요소가 있다면, 그 중 하나만으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25]리카르도는 스미스의 사슴과 비버의 비유를 수정하여,[26] 노동만이 유일한 생산 요소일 때 조차도, 노동의 어려움과 도구가 재화의 상대적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였다.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는 리카르도의 노동가치설에 대한 비판으로 그의 이론을 "93% 노동가치설"이라고 불렀다.[27]
리카르도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정치경제학 및 과세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1817)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노동가치설을 제시했다.[28]
> 어떤 상품의 가치, 또는 그것과 교환될 다른 어떤 상품의 양은 그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의 상대적 양에 따라 결정되며, 그 노동에 대한 보상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리카르도의 제6절 주석에 따르면,[29] 맬서스는 리카르도의 학설 일부가 사물의 비용과 가치가 같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리카르도는 비용을 이윤을 포함한 "생산 비용"으로 본다면 옳다고 생각했다.
리카르도는 노동가치설에 근거한 수확체감에 의한 결과로서의 지대 형성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에서 주장했다.
3. 2. 지대론
리카도는 지대, 임금, 이윤 이론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지대를 "자본과 노동의 두 가지 동일한 양을 사용하여 얻은 생산물의 차이"로 정의했다.[30] 리카도는 경제 발전 과정, 즉 토지 이용 증가와 결국 열악한 토지의 경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주로 지주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보았다. 리카도에 따르면, 소유로 인해 얻어지는 "실제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러한 프리미엄은 개인에게는 가치가 있지만, "사회"에는 기껏해야[31] 종이 화폐 수익일 뿐이다. 리카도는 희소 자원에 발생하는 이러한 순전히 개인적인 이익의 일부를 "지대"라고 명명했다.리카도는 지대가 인구 증가의 결과이며, 이는 자산의 부족과 한때 풍부했던 감소 수익으로 이어진다고 가정했다. 그는 옥수수를 생산하는 세 개의 토지(1번, 2번, 3번)를 가정하여 이러한 전제를 설명했다.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은 동일했다. 처음에는 1번 토지가 경작되어 풍부한 잉여 생산량으로 측정할 때 매우 생산적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구 증가로 인해 이러한 풍부한 잉여 생산량이 감소하고 식량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덜 바람직한 2번 토지가 경작되어야 했으며, 결국 3번 토지도 경작되어야 했다. 리카도에 따르면, 각각의 새로운 경작은 토지의 질이 이전보다 생산량이 낮기 때문에 잉여 생산량이 감소했다. 이러한 잉여 생산량 감소를 고려하여 지주들은 생산량 감소분을 보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대를 부과할 기회를 보게 되었다.[30]
리카도는 수확체감에 의한 결과로서의 지대 형성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에서 주장했다.
3. 3. 비교우위론
데이비드 리카도는 1799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제7장에서 비교우위 이론을 바탕으로 자유 무역의 이익을 주장했다.[77]리카르도는 한 국가가 모든 분야에서 다른 무역 상대국보다 경쟁력이 있더라도, 비교우위를 가진 산업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3] 즉, 경쟁국에 비해 경쟁 우위를 점하는 산업이 아니라, 자체적인 자원의 다른 용도에 비해 생산 효율성이 가장 높은 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약간 수익성이 있고 국제 경쟁력이 약한 국내 산업은 자원을 더 잘 활용하는 산업으로 대체해야 하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성장이 단기적인 경제적 혼란을 상쇄할 것이라고 보았다.
리카르도는 국제 무역이 항상 유익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려 했다.[34] 폴 새뮤얼슨은 영국과 포르투갈 간의 무역을 다룬 리카르도의 예시에 사용된 숫자를 "네 가지 마법의 숫자"라고 불렀다.[35] 리카르도는 포르투갈이 옷과 포도주 모두를 더 적은 노동력으로 생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 모두 서로 간의 무역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카르도의 국제무역 이론은 1844년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재구성되었다.[36] "비교우위"라는 용어는 J. S. 밀과 그의 동시대인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국제무역 이론의 신고전주의적 전환을 시작했는데, 그의 공식화는 알프레드 마셜 등에 의해 계승되었고, 리카르도 반대 개념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의 부활에 기여했으며, 신고전주의적 가치 이론의 등장을 불러왔다.[37]
리카르도의 네 가지 마법의 숫자는 오랫동안 고정된 공급의 노동(또는 다른 투입 요소) 계수의 두 비율을 비교한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 해석은 현대 경제학자들에 의해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으로 간주된다. 2002년 로이 J. 러핀[38]과 2004년 안드레아 마네스키[39]는 이러한 점을 자세히 재검토하고 설명했다. 보다 유연한 접근 방식은 1930년 피에로 스라파와 1974년 겐조 유키자와[40]에 의해 이전에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새로운 해석"으로 알려져 있다.[41] 새로운 해석은 무역 이론과 관련하여 리카르도의 『정치 경제 및 조세 원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지만, 최적 자원 배분의 수학적 내용은 바꾸지 않는다.
리카르도는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했다. 그는 영국의 "곡물법"—농산물에 대한 관세 부과—으로 생산성이 낮은 국내 토지가 경작되고 지대가 상승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는 곡물법이 영국 경제의 침체를 초래하고 있다고 믿었다.[42] 1846년 그의 조카인 존 루이스 리카르도는 영국 의회 의원으로 스토크온트렌트 선거구를 대표하며 자유무역과 곡물법 폐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리카르도 자신도 비교우위론이 특정 조건, 즉 자본이 이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만 적용된다는 것을 인식했다.[46] 그는 자본이 이동 가능한 상황에 그의 이론을 적용하면 해외 이전이 발생하고, 경제 침체와 일자리 감소가 초래될 것임을 인지했다.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리카르도의 주장은 무역 제한이 국가 경제 발전에 필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비판받기도 했다. 우차 파트나익은 국제 무역에 대한 리카르도 이론에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리카르도는 두 국가 모두에서 두 가지 상품이 생산 가능하고 실제로 생산된다고 가정했지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은 종종 자국에서 생산할 수 없는 상품을 거래하며, 이 경우 어느 국가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47]
또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은 생산이 지속적이고 절대적이라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현실에서는 자연 재해 등으로 생산이 중단될 수 있으며, 이 경우 특정화는 외국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조앤 로빈슨은 영국과의 자유 무역 개방 이후 포르투갈이 수세기 동안 경제적으로 저개발 상태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리카르도의 예시에는 경제가 완전 고용 상태의 정적 균형 상태에 있어야 하고 무역 적자나 무역 흑자가 발생할 수 없다는 전제가 현실 세계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리카르도의 수학적 모델이 일부 국가가 서로 다른 발전 수준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아 '불평등 교환'의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48]
발전 경제학자 하준창은 자유 무역이 모든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리카르도의 이론은 "현재의 기술 수준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때" 국가가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것에 특화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올바르게 말하지만, 국가가 더 발전된 기술을 획득하려고 할 때, 즉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할 때는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는 데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므로 기술적으로 뒤처진 생산자는 이러한 학습 기간 동안 국제 경쟁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이는 발전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는 것이다.[49]
3. 4. 자유 무역 옹호
리카도는 자유 무역을 강력하게 옹호했다.[14] 1821년 그는 서인도 제도산보다 동인도 제도산 농산물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에 반대하며 설탕 관세 갱신에 반대표를 던졌다. 목재 관세에도 반대했다. 그는 의회 개혁에 찬성표를 던졌고, 1822년 웨스트민스터 기념 개혁 만찬에서 이를 옹호하는 연설을 했으며, 형사 사법 개혁에도 찬성표를 던졌다.[14]리카도는 자유 무역을 통한 수입 증가가 생계 및 소비에 필요한 상품의 양을 늘려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킨다고 믿었다.[14] 그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증권 거래로 부를 축적했다.[14]
나폴레옹 전쟁 동안 리카도는 영국이 수출 장려를 위해 부과한 곡물법에 반감을 키웠다. 그는 곡물법으로 인한 지대 상승이 국가의 경제적 이윤을 희생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영국이 제조업 제품을 수출하고 농산물을 수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16] 그의 사후 간섭주의적 법률이 폐지되면서 그의 자유 무역관은 영국의 공공 정책이 되었다.[17]
아담 스미스처럼 리카도도 농업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했다. 그는 영국의 곡물법이 생산성이 낮은 국내 토지 경작과 지대 상승을 초래한다고 믿었다. 그는 곡물법이 영국 경제 침체를 야기한다고 보았다.[42] 1846년 그의 조카 존 루이스 리카르도는 스토크온트렌트 선거구를 대표하는 영국 의회 의원으로서 자유 무역과 곡물법 폐지를 주장했고, 의회는 같은 해 곡물법을 폐지했다.[43]
리카도는 비교우위를 통한 산업 특화와 자유 무역을 옹호했다. 그는 산업 특화와 자유로운 국제 무역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절대우위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33] 그는 한 국가가 모든 분야에서 다른 무역 상대국보다 경쟁력이 있더라도 무역으로 상호 이익이 발생하며, 국가는 자원의 다른 대체 용도에 비해 생산 효율성이 가장 높은 비교우위 산업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3]
리카도는 국제 무역이 항상 유익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려 했다.[34] 폴 새뮤얼슨은 영국과 포르투갈 간 무역을 다룬 리카르도 예시의 숫자를 "네 가지 마법의 숫자"라 불렀다.[35]
리카도의 국제무역 이론은 1844년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재구성되었다.[36] "비교우위" 용어는 J. S. 밀과 동시대인들이 도입했다. 밀은 국제무역 이론의 신고전주의적 전환을 시작했고, 그의 공식화는 알프레드 마셜 등에 의해 계승되어 수요와 공급 법칙의 부활, 신고전주의적 가치 이론 등장에 기여했다.[37]
리카르도의 네 가지 마법의 숫자는 오랫동안 고정된 공급의 노동(또는 다른 투입 요소) 계수의 두 비율 비교로 해석되었으나, 현대 경제학자들은 이를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으로 본다. 이는 2002년 로이 J. 러핀[38], 2004년 안드레아 마네스키[39]에 의해 재검토 및 설명되었다. 1930년 피에로 스라파, 1974년 겐조 유키자와[40]가 언급한 유연한 접근 방식은 현재 "새로운 해석"으로 알려져 있다.[41]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이 자본 이동이 없는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영역 특수적 이론임을 인식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포르투갈에서 와인과 직물이 모두 생산되고, 영국의 직물 생산 자본과 노동이 포르투갈로 이동하는 것이 영국 자본가들[그리고 소비자들]에게 분명 유리할 것입니다.[46]
리카도는 자본 이동 가능한 상황에 이론을 적용하면 해외 이전으로 경제 침체와 일자리 감소가 발생함을 인식했다. 이를 위해 그는 (i) "대부분 부유한 사람들은 외국에서 더 유리한 투자처를 찾기보다 자국에서 낮은 이윤율에 만족할 것이며", (ii) 자본은 기능적으로 이동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46]
자유 무역 지지 주장은 무역 제한이 국가 경제 발전에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비판받았다. 우차 파트나익은 국제 무역에 대한 리카르도 이론에 논리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리카르도는 두 국가 모두에서 두 가지 상품이 생산 가능하고 실제로 생산된다고 가정했지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은 종종 자국에서 생산할 수 없는 상품을 거래한다. 이 경우 어느 국가가 비교우위를 갖는지 정의할 수 없다.[47]
비판론자들은 리카르도의 비교우위론이 생산이 지속적이고 절대적이라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는 자연 재해 등으로 생산 중단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특정화는 외국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예로 산업 국가가 농산물과 교환하여 제조품을 농업 국가와 거래할 때, 농업 국가에서 가뭄 등이 발생하면 산업 국가는 기근에 직면할 수 있다.
조앤 로빈슨은 영국과의 자유 무역 개방 이후 포르투갈이 수세기 동안 경제 저개발 상태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포르투갈에 대한 자유 무역 강요는 유망한 섬유 산업을 파괴하고 와인에 대한 느리게 성장하는 수출 시장을 남겼고, 영국은 면직물 수출로 자본 축적, 기계화, 산업 혁명의 성장이 이루어졌다." 로빈슨은 리카르도 예시에 경제가 완전 고용 상태의 정적 균형이며 무역 적자나 흑자가 발생할 수 없다는 전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는 현실과 관련 없다고 썼다. 또한 리카르도 수학 모델이 국가 간 발전 수준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 '불평등 교환'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48]
발전 경제학자 하준창은 자유 무역이 모든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리카르도 이론은 좁은 범위 내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현재 기술 수준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때" 국가가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것에 특화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올바르게 말합니다. 그 점은 반박할 수 없습니다. 국가가 더 발전된 기술을 획득, 즉 경제를 발전시키려 할 때 이론은 실패합니다. 새로운 기술 흡수에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므로 기술적으로 뒤처진 생산자는 학습 기간 동안 국제 경쟁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이는 비용이 들지만(더 저렴한 제품 수입 기회 포기), 발전된 산업 발전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입니다. 리카르도 이론은 현상 유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만, 현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49]
리카도는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제7장에서 비교우위 이론을 바탕으로 자유무역의 이익을 논증했다.[77]
3. 5. 기계 도입과 실업 문제
리카도는 1821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제3판 제31장 "기계에 관하여"에서 기계 도입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단기적으로 실업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77] 이전까지 리카도는 기계 도입이 노동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면서 노동자 계급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44] 그는 "노동자 계급이 기계 사용이 그들의 이익에 종종 해롭다는 견해는 편견과 오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의 올바른 원칙에 부합한다"고 썼다.[44]4. 영향과 유산
데이비드 리카도의 사상은 이후 경제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이전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리카도를 애덤 스미스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경제 사상가로 평가했다.[50]
리카도의 저술은 1820년대 여러 초기 사회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51] 이들은 노동가치론에 기반하여 자본가의 이윤이 노동자 착취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토마스 호지스킨, 윌리엄 톰슨, 존 프랜시스 브레이, 퍼시 레이븐스톤 등이 대표적이다.
조지주의자들은 리카도가 말한 지대(rent)가 공동체 전체에 속한다고 믿는다. 헨리 조지는 리카도의 영향을 크게 받아 자신의 저서 『진보와 빈곤』 등에서 그를 자주 인용했다.[52]
신고전파 학파의 부상으로 리카도의 영향력은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피에로 스라파가 리카르도를 재평가하면서 신리카르도 학파가 탄생했다.[53][54] 루이지 파시네티, 피에란젤로 가레냐니, 이언 스티드먼, 제프리 하코트, 하인츠 쿠르츠, 네리 살바도리, 피에르 파올로 사비오티 등이 이 학파에 기여했다.
일본의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는 리카도를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함께 경제학사의 "특별한 거장"으로 꼽으며,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평가했다.
리카도의 학설은 칼 마르크스와 레옹 발라스에게 영향을 주어, 노동가치론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중심이 되었고, 차액지대론은 희소성 이론으로 발전되어 신고전파 경제학에 기여했다.
4. 1. 리카도 학파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유로운 상업 은행이 경제 성장에 유리하다고 주장했지만,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중앙은행을 옹호했으며,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을 포함한 그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다. 밀은 은행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선호했다.[22]리카르도는 (사후 출판된) 『국립은행 설립 계획』에서 화폐 발행 기관으로서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주장했다. 그는 금과 국고증권의 비율, 정부에 대한 고정 채권(자산)이 중앙은행의 유동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제안했다.[23]
리카르도는 경제 내 다양한 계층과 사회경제적 구성을 이해하고, 노동 생산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은행 시스템 내에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은행과 통화 정책 통제 사이에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1816년, 리카르도는 화폐 유통량 조절 권한이 국가나 개인에게 위임되어서는 안 되며, 균등한 분배와 통제를 주장했다.
리카르도의 학설은 칼 마르크스와 레옹 발라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중심이 되었고, 차액지대론은 희소성 이론으로 발전되어 신고전파 경제학에 기여했다. 일본의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는 리카르도를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평가했다.
4. 2. 리카도 사회주의
자유방임 자본주의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리카도의 저술은 1820년대 여러 초기 사회주의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켰는데, 그들은 그의 가치 이론이 급진적인 함의를 지닌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노동가치론의 관점에서 노동이 전체 생산물을 만들어내며, 자본가들이 얻는 이윤은 노동자 착취의 결과라고 주장했다.[51] 여기에는 토마스 호지스킨, 윌리엄 톰슨, 존 프랜시스 브레이, 그리고 퍼시 레이븐스톤이 포함된다.4. 3. 신리카도 학파
피에로 스라파는 신고전파 학파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던 또 다른 경제 사상의 계보를 데이비드 리카도가 개척했다고 재평가하면서 그를 부활시켰다. 리카르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스라파의 한계효용가치론에 대한 비판은, 현재 신리카르도파 또는 스라파파로 불리는 새로운 학파를 탄생시켰다.[53][54] 이 학파의 주요 기여자로는 루이지 파시네티 (1930–2023), 피에란젤로 가레냐니 (1930–2011), 이언 스티드먼 (1941–), 제프리 하코트 (1931–2021), 하인츠 쿠르츠 (1946–), 네리 살바도리 (1951–), 피에르 파올로 사비오티 (–) 등이 있다. 신리카르도주의 참조. 신리카르도파는 때때로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의 한 부분으로 간주된다.신리카르도 학파에서는 몇몇 독특한 그룹이 생겨났는데, 그중 하나는 루이지 파시네티, J.S. 메트칼프, 피에르 파올로 사비오티, 코엔 프렌켄 등이 개발한 진화적 성장 이론이다.[59][60] 파시네티[61][62]는 어떤 상품에 대한 수요도 정체되고 종종 감소하며, 수요 포화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침체를 피하려면 새로운 상품(재화와 서비스)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4. 4. 현대적 의의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모리시마 미치오는 경제학사에서 애덤 스미스, 리카도, 칼 마르크스, 케인스를 "특별한 거장" 네 사람으로 꼽았으며, 특히 리카도를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평가하고 있다.[1]리카도의 학설은 마르크스와 발라스에 의해 후대 경제학에 영향을 미쳤다.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중심적 틀이 되었고, 힐퍼딩과 로자 룩셈부르크 등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2] 또한,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은 희소성 이론으로 발라스에 의해 발전되어 후대 신고전파 경제학에 기여했다.[3]
5. 주요 저서
- ''https://archive.org/details/highpriceofbulli10rica/page/n5/mode/2up 고가의 금괴, 은행권의 가치 하락 증거''(1810), 금본위제 채택을 주장했다.[50]
- ''저가의 곡물이 주식 이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에세이''(1815), 곡물법 폐지가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부를 분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정치경제학 및 조세 원리론''(1817), 인구 증가에 따라 지대가 증가한다는 결론을 내린 분석이다. 또한, 모든 국가가 비록 어떤 국가가 모든 종류의 상품 생산에서 교역 파트너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자유무역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비교우위 이론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 The Works of David Ricardo|데이비드 리카르도의 저서영어 (1888), 존 머레이 출판, 런던
- The Works and Correspondence of David Ricardo|데이비드 리카르도의 저서와 서신영어 (전 11권) (1951, 1981년 제1판 페이퍼백),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번역서
원제 | 번역서명 | 번역자 | 출판사 | 출판연도 |
---|---|---|---|---|
On the Protection of Agriculture|농업보호정책 비판 지대론영어 | 농업보호정책 비판 지대론 | 대구일사 | 이와나미 문고 | 1948년 |
Essay on the Influence of a Low Price of Corn on the Profits of Stock|농업경제론집영어 | 농업경제론집 | 복부일마 | 춘추사 | 1950년 |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영어|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 소이즈 신사 | 이와나미 문고 | 1928년 | |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 다케우치 켄지 | 도쿄대학 출판회 | 1973년 | |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 하토리 타쿠야, 요시자와 요시키 | 이와나미 문고 | 1987년 | |
말서스에게 보낸 편지 | 나카노 타다시 | 이와나미 문고 | 1949년 | |
리카르도의 매컬록에게 보낸 편지 | 나카노 타다시 | 이와나미 문고 | 1949년 | |
리카르도의 트로와에게 보낸 편지 | 제임스 보나, 제이콥 H. 홀란다 편, 나카노 타다시 역 | 이와나미 문고 | 1955년 | |
데이비드 리카르도 전집 전11권 | 유송당서점 | 1971-1999년 | ||
제1권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영어 |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 | 호리 쓰네오 | ||
제2권 Notes on Malthus'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영어 | 말서스 경제학 원리 평주 | 스즈키 코이치로 |
참조
[1]
서적
Economics Today
Pearson Education
[2]
서적
On classical economics
Yale University Press
[3]
웹사이트
David Ricardo | Policonomics
http://www.policonom[...]
2012-01-30
[4]
서적
Springer Netherlands
[5]
서적
Anglo-Jewish Portraits- A Biographical Catalogue of Engraved Anglo-Jewish and Colonial Portraits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Accession of Queen Victoria
Jewish Museum, London
[6]
논문
The Dutch and Portuguese-Jewish background of David Ricardo
[7]
웹사이트
The 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http://www.oxforddnb[...]
2004-09-02
[8]
웹사이트
Œuvres complètes de David Ricardo
https://fr.wikisourc[...]
Guillaumin
[9]
서적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G. Bell
[10]
서적
The Works and Correspondence of David Ricardo: Volume 10, Biographical Miscella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1]
웹사이트
Samuelsonian legends about Ricardo’s finances lack historical evidence
https://www.eshet-co[...]
[12]
간행물
London Gazette
1818-01-24
[13]
웹사이트
David Ricardo Biography, Theory, Comparative Advantage, & Works
https://www.britanni[...]
2021-07-07
[14]
뉴스
Economist David Ricardo
https://www.wsj.com/[...]
2017-05-26
[15]
서적
David Ricardo
Palgrave Macmillan
[16]
서적
Ricardo's Macroeconom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7]
논문
David Ricardo - Theory of Free International Trade
https://www.dallasfe[...]
[18]
웹사이트
Ricardo, David (1772–1823), of Gatcombe Park, Minchinhampton, Glos. and 56 Upper Brook Street, Grosvenor Square, Mdx.
http://www.histparl.[...]
History of Parliament Online
[19]
서적
The Trend of Economic Thinking
https://archive.org/[...]
Liberty Fund
[20]
서적
The Works and Correspondence of David Richardo
https://oll-resource[...]
[21]
서적
David Ricardo
Palgrave Macmillan
[22]
서적
The Oxford Handbook of the Economics of Central Banking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9-03-15
[23]
서적
Central Banking Before 1800: A Rehabilitation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4]
웹사이트
Adam Smith on the Labor Theory of Value Adam Smith Works
https://www.adamsmit[...]
2024-05-13
[25]
서적
Economics Evolving A History of Economic Thought
Princeton University Press
[26]
웹사이트
Adam Smith on the Labor Theory of Value Adam Smith Works
https://www.adamsmit[...]
2024-05-13
[27]
논문
Ricardo and the 93% Labor Theory of Value
https://www.jstor.or[...]
[28]
서적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9]
서적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30]
웹사이트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by David Ricardo, 1817
https://www.marxists[...]
2024-05-13
[31]
서적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John Murray
[32]
서적
The World in the Model: How Economists Work and Thin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09-17
[33]
뉴스
The trade question
https://www.washingt[...]
2003-08-27
[34]
서적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35]
서적
The Way of an Economist.
Cambridge MIT Press
[36]
서적
Essays on some unsettled questions of political economy
John W. Parker
[37]
서적
An Origin of the Neoclassicla Revolutions: Mill's "Reversion" and its consequences
Springer Japan
[38]
논문
David Ricardo's discovery of comparative advantage
[39]
논문
The true meaning of David Ricardo's four magic numbers
[40]
서적
Yukizawa's interpretation of Ricardo's 'theory of comparative cost'
Routledge
[41]
서적
A calm investigation into Mr. Ricardo's principle of international trade
Routledge
[42]
서적
The works and correspondence of David Ricardo : Volume 9, Letters July 1821–1823
Cambridge University Press
[43]
논문
The impact of the Corn Laws just prior to repeal
[44]
논문
Retrospectives Ricardo on Machinery
[45]
논문
A new framework for analyzing technological change
[46]
서적
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
https://archive.org/[...]
John Murray
[47]
서적
Ricardo's Fallacy/ Mutual Benefit from Trade Based on Comparative Costs and Specialization?
Zed books
[48]
서적
Aspects of Development and Underdevelopment
https://archive.org/[...]
Cambridge University Press
[49]
서적
Bad Samaritans
[50]
논문
Economics Professors' Favorite Economic Thinkers, Journals and Blogs (along with Party and Policy Views)
http://econjwatch.or[...]
[51]
서적
History of Economic Thought
[52]
서적
Progress and Poverty
[53]
서적
The Works and Correspondence of David Ricardo
Cambridge University Press
[54]
서적
Production of Commodities by Means of Commodities: Prelude to a Critique of Economic The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55]
서적
Fundamental Issues in Trade Theory
MacMillan
[56]
서적
Trade Amongst Growing Economies
https://archive.org/[...]
Cambridge University Press
[57]
서적
The Fragmented World: Competing Perspectives on Trade, Money, and Crisis
Methuen & Co.
[58]
논문
The classical theory of international trade after Sraffa
[59]
서적
Structural change and economic growth
Cambridge University Press
[60]
논문
Export variety and the economic performance of countries
[61]
서적
Structural change and economic growth: a theoretical essay on the dynamics of the wealth of nati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62]
서적
Structural economic dynamics: a theory of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human learn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63]
논문
Comparative Advantage, Trade, and Payments in a Ricardian Model with a Continuum of Goods
https://web.archive.[...]
[64]
논문
A Ricardian Model with a Continuum of Goods under Nonhomothetic Preferences: Demand Complementarities, Income Distribution, and North–South Trade
http://darkwing.uore[...]
[65]
논문
A New Construction of Ricardian Trade Theory: A Multi-country, Multi-commodity Case with Intermediate Goods and Choice of Production Techniques
[66]
서적
The new theory of international values: An overview
Springer
[67]
서적
The nature of international competition among firms
Springer Japan
[68]
서적
Just How Big is Global Production Sharing?
Oxford University Press
[69]
서적
On Intra-Firm Trade and Multinationals: Foreign Outsourcing and Offshoring in Manufacturing
[70]
서적
The Fragmented World: Competing Perspectives on Trade, Money and Crisis
Methuen
[71]
서적
Unequal exchange; a study of the imperialism of trade
https://archive.org/[...]
Monthly Review Press
[72]
논문
Dependency: A formal theory of underdevelopment or a methodology for the analysis of concrete situations of underdevelopment?
[73]
웹사이트
David Ricardo British economist
https://www.britanni[...]
[74]
서적
やさしい経済学史
日本経済評論社
[75]
서적
経済学をつくった巨人たち-先駆者の理論・時代・思想
日本経済新聞社
[76]
서적 # 추정
The High Price of Bullion, a Proof of the Depreciation of Bank Notes
[77]
웹사이트
経済学史の窓から 第8回 リカードウは技術的失業の予言者か?
http://www.yuhikaku.[...]
[78]
서적
経済学をつくった巨人たち-先駆者の理論・時代・思想
日本経済新聞社
[79]
서적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알튀세르, ‘자본’을 철학적으로 읽는다는 것 [.txt]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